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 말 왜구의 침입 (문단 편집) == 발단과 배경 == 고려를 노린 왜구의 최초 침공은 [[고종(고려)|고종]](高宗) 10년인 1223년에 벌어졌다. 이 '13세기의 왜구' 들은 몇차례 산발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나, 국가 전체의 규모에서 보자면 단순한 소란에 불과했다. 또한 [[쿠빌라이 칸]]의 일본 원정 이후 이 얼마 되지 않던 13세기의 왜구들도 자취를 감춰, 향후 85년 동안 왜구의 발생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그치게 되었다. 그러나, 《[[고려사]]》의 1350년에 대한 기록에는 이후 40여 년에 걸쳐 고려의 운명을 뒤흔들 하나의 사건이 언급되고 있다. >왜적이 고성(固城)[* 지금의 경상남도 고성군]·죽림(竹林)·거제(巨濟)를 침구하자 합포(合浦)의 천호(千戶) 최선(崔禪)과 도령(都領) 양관(梁琯) 등이 전투를 벌여 격퇴하고 적 3백여 명을 죽였는데[*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면 다시 봐라. 죽은 것만 '''300명 이상'''이다. 전체적인 규모는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. 단순한 도적떼가 300명 되는 것도 힘든데 죽은 것만 300이면 이미 단순한 도적떼로 볼 수 없다. 최소한 천 단위의 왜구가 침략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.], '''왜적의 침구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.''' >---- >''' 《[[고려사]]》 충정왕 2년''' 이 ~~헬게이트 오픈~~ 운명적인 언급 이후, 고려와 왜구의 관계는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. 이 기록이 언급하고 있는 1350년부터 고려 왕조가 역사상에서 사라진 1392년까지, '''장장 40여 년 동안 총 394건이나 되는 왜구의 침공 기록'''이 남아 있다. 또한 이 왜구에 대한 공격은 이 43년 동안 1353년, 1356년, 1368년, 1386년의 단 4년을 제외하고는 '''매년''' 발생하였다. 또한 이 왜구들은 과거 13세기의 왜구들이 남해안 지역을 약탈하고 곧 물러갔던 것에 비하여, 약탈 이후에도 곧바로 철수하기는커녕 연안 도시에 체재하거나 대륙 깊숙히 진공, 사람을 납치하고 고려의 지방 행정을 완전히 마비시켰다. 이제 고려는 왜구를 근절하지 않고서는 국가로서의 존립 그 자체까지 위협받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. 심지어는 해로의 중요 거점에 주둔하면서 조운선을 기다리다가 털어먹기도 했다. 이로 인해 관료들의 녹봉이 '''9개월째''' 밀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. 물론 6개월에 한 번 주는 것이라지만 파업하지 않은 것이 용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